종목 : 경기도기념물 제134호 명칭 : 신익희생가(申翼熙生家) 수량/면적 : 1,685㎡ 지정일 : 1992.12.31 소재지 :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 160-1
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인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의 생가이다. 가옥은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지금 있는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고종 2년(1865) 대홍수로 집이 파손되어 옮긴 건물은, 전체적으로 20세기 초에 크게 고쳐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안채는 T자형 평면을 이루는데 가운데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안방을 두고 왼쪽에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 앞으로는 부엌을 두었다.바깥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가운데에 대문을 두고 왼쪽에 2칸 사랑방을 두었다. 이 집은 전통 한옥의 외관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20세기 초 경기지역 중 소지주 계층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가옥은 해방 전후 시기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로서 광복 후 제헌국회(制憲國會) 부의장, 국회의장을 역임한 해공(海公) 신익희(1894∼1956)의 생가이다. 원래는 지금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m 지점에 가옥이 있었으나, 고종(高宗) 2년(1865) 을축년(乙丑年) 대홍수로 집이 파손되어 고종 4년경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건축물대장에는 1925년에 건축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가옥은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목조 기와집으로 전통 한옥의 외관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T자형을 이루는데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 좌측으로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 앞으로 부엌을 두었다. 바깥채는 ㄱ자형으로 가운데에 대문을 두고 좌측에 2칸의 사랑방을 두었다.
이 집은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19세기 또는 20세기 초 경기 지역 중소 지주 계층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기둥의 일부 부재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부재가 가늘고 치목 수법도 오랜 것이 아니어서 적어도 20세기 초에 들어와 크게 개축된 것으로 짐작된다. 안채는 2002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이듬해 원형대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